분황사

634년(선덕여왕 3)에 창건(創建)되었다. 국보 제30호로 지정된 모전석탑(模磚石塔)을 비롯하여, 화쟁국사비 비석대(和諍國師碑 碑石臺)·석정(石井)·석조(石槽)·초석(礎石)·석등·대석(臺石)과 사경(寺境) 이외에 당간지주(幢竿支柱)가 남아 있어 보존되고 있다.
이 절에는 775년(경덕왕 14) 본피부(本彼部)의 강고내미(强古乃未)가 구리 30만 6700근을 들여 만들었다는 약사여래동상이 있었다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원효(元曉)가 이곳에서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썼고,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은 신화(神畵)로 일컬어졌다.
또한 절의 좌전에 있었던 천수대비(千手大悲) 벽화는 매우 영험이 있어서 눈 먼 여자 아이가 노래를 지어 빌었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고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분황사 [芬皇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관람 시간 09:00 ~ 18:00 (하절기)
09:00 ~ 17:00 (동절기)
입장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