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감은사지삼층석탑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용당리 55-1번지에 소재한 통일신라 시대의 신문왕때 지어진 사찰. 현재는 건물 터와 감은사지 3층 석탑(국보 제112호) 둘 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터만 남아있기에 현재는 감은사지라고 불린다. 사적 제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무대왕릉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만큼 문무왕과 관련된 전설이 남아있는 절이다.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가람배치인 2탑식(2탑 1금당식)을 따랐기에 지금도 절 터에 석탑 두 기가 남이 있다. 강당도 있지만 절 자체는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사진으로는 남은 탑들이 작아 보이지만, 막상 실제로 가서 보면 생각보다 꽤나 크다.
특히 주변이 허허벌판과 논밭뿐이라 상대적으로 탑 2기, 그리고 탑 정중앙에 꽂힌 침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생김새는 불국사 석가탑과 비슷하지만 크기는 훨씬 크다.
원래 목탑을 주로 세우고 석탑 문화가 빈곤했던 신라가 백제 미륵사의 거대한 석탑을 받아들이는 도중에 있는 과도기적인 작품이라고 추측한다. 그 때문에 통일 신라 시기의 석탑 중에는 가장 크다.
1959년 서탑을, 1996년 동탑을 해체수리했고 탑에서 나온 두 정교한 금동 사리갖춤은 현재 각각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나누어 전시 중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문무왕이 부처의 힘을 빌려 왜구를 격퇴하고자 절을 짓기 시작하였고,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 2년(682)에 완공되었다. 문무대왕릉이 있는 바다와 물길이 이어지게 만든 구조 등을 보아서 문무대왕릉과 함께 세트로 계획,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발굴 조사 결과 삼국유사에 언급된 내용이 실제 절터의 독특한 구조에 부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무왕은 해변에 절을 세워 불력으로 언젠가 쳐들어올지 모를 왜구를 격퇴시키려 절의 이름을 진국사(鎭國寺)라 하였으나, 절을 완공하기 전에 위독하게 되었다. 문무왕은 승려 지의법사에게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킬 것"을 유언하고 죽자, 이에 따라 화장한 뒤 동해에 안장하였으며, 신문왕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감은사라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절을 완공하면서 금당 아래에 동해 바다가 있는 동쪽으로 '용혈'을 파서 용으로 변한 문무왕이 해류를 타고 출입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감은사지의 부근인 동해바다 가까운 곳에는 문무대왕릉으로 알려진 작은 바위섬이 있다.
(나무위키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