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

에 관한 최초 기록인 삼국유사는 첨성대의 건립시점을 선덕여왕대(632~647)로 밝히고 있고, 삼국유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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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

첨성대

첨성대에 관한 최초 기록인 삼국유사는 첨성대의 건립시점을 선덕여왕대(632~647)로 밝히고 있고, 삼국유사 이후의 사서에서도 이에 반하는 기록이 보이지 않으므로 선덕여왕대에 첨성대가 건립된 것 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첨성대는 신라의 왕궁이 있었던 월성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362개의 화강암 벽돌을 사용하여 원통형으로 축조하였다. 높이는 9.4미터, 밑면 지름6.09미터, 지대석 한 변 길이는 5.35미터이다.
돌로 27층을 쌓았으며, 꼭대기에는 다시 우물 정(井) 모양의 2층의 천장돌이 있다. 13층에서 15층에 이르기까지 정남향의 네모난 문이 있고, 이 문의 아래로 12층이 있고 위로 13층이 있으므로 첨성대 위아래의 중간에 문이 위치한다. 이 문에 사다리를 걸쳐 사람이 오르내렸다.
내부에는 12단까지 흙이 채워져 있고, 내부에 19단과 20단, 25단과 26단이 장대석을 이루고 있다.

첨성대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전통적으로 별을 관찰하는 천문대의 기능을 했으리라 여겨져왔다. 1960년대 이전에는 별 이견이 없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그 위에 목조 구조물이 세워져 혼천의가 설치되었으리라는 생각과, 개발식 돔으로서의 관측대라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첨성대는 창문을 제외하면 어느 방향에서나 같은 모양이며, 계절과 태양의 위치에 관계없이 일구를 측정하여 시간을 헤아릴 수 있으므로 4가지 계절과 24절기를 확실히 정할 수 있다.
정남으로 열린 창문은 사람이 사다리를 걸쳐 놓고 오르내리는 데도 쓰였지만, 춘.추분에 태양이 남중할 때 이 창문을 통하여 태양광선이 바로 대안의 밑바닥까지 완전히 비출 수 있는 위치에 열려 있다. 그러므로 동.하지에는 창문 아래 부분에서 광선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므로 분점과 지점 측정의 보조역할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절기의 정확한 측정에 의하여 역법을 바로 잡기 위한 측경을 목적으로 설립된 규표 즉, 측경대로서 일구를 측정하는 천문대일 뿐 아니라, 신라 천문 관측의 중심지로서 신라 천문 관측에서 자오선과 동서남북 4방위의 표준으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2005년 언론 등의 보도에 따르면 북쪽으로 7.2센티미터, 동쪽으로 2.4센티미터 정도 기울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원인은 북동쪽 지반이 무르고 수분이 많은 탓으로 보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은 한국 전쟁 이후 기울어짐이 심해졌으며 당시 북쪽의 도로를 지나던 탱크 등에 의해 지반이 약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에 대해 우려할 수준은 아니며, 국내외 연구진에 의한 연구 결과 또한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라고 밝히고 있다.
2016. 9. 경주에 발생한 지진의 여파로 석축이 지진 발생 전에 비해 약 1.2센티미터 정도 벌어졌지만 균열은 없었다고 한다.

관람 시간 : 제한 없이 개방.
입장료 : 무료

경북 경주시 첨성로 140-25 (황남동, 첨성대 매표소)

- 입장료 : 무료
- 휴일 : 연중 무휴
- 이용시간 : 09:00~22:00 (동절기 21:00까지)